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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리더십을 말하다

[관련정보] 우리의 마음 안에선 예수와 석가가 만날 수 있지요

중앙일보 26일자 조간에 실린 특집 기사입니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와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이자 동시에 신부임에도 불교학을 가르치는 서명원 교수의 대담입니다. 버스웰 교수의 경우 미국 유학 시절 UCLA에서 Korean Buddhist Texts(Seminar)를 수강한 적이 있는데, 워낙 독특한 배경을 가지신 분이고, 한국말을 은근 잘하시기에 강의 후 영어로 드린 질문에 한국말로 답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9주차 강의 주제였던 타자를 타종교인으로 규정하고, 소통의 중요성을 필요로 할 때에 참고하시면 좋을만한 기사인 것 같아 퍼옵니다.

19일 서울 강남의 봉은사에서 세계적 불교학자 로버트 버스웰 (56·UCLA 아시아언어문화학) 교수와 예수회 서명원(56·본명 베르나르 스네칼) 신부가 만났다. 버스웰 교수는 미국인이고, 서명원 신부는 프랑스인이다. 둘 다 1953년생, 뱀띠다. 20일 열린 ‘2009 포스코아시아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버스웰 교수는 74년(당시 21세) 순천 송광사에서 출가, 5년간 참선 수행을 한 바 있다. 청춘을 한국에서 보낸 그는 부인도 한국인이다. “어, 뱀띠네요. 생일이 몇 월이죠?”라고 묻던 서 신부는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다. 한때는 의학도였다. 6년간 의과대학을 다니며 350구가 넘는 시신을 해부했다. 그러나 치료 기술만 배울 뿐 인간이 왜 아픈지, 왜 죽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사제가 됐다. 로만 칼라를 한 가톨릭 신부인데도 강단에서 불교학을 가르친다. 몸소 참선 수행도 하고 있다. 그들에게 물었다. 기독교와 불교, 불교와 기독교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두 종교의 소통은 가능한가? 대담은 깊고도 진지했다.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로버트 버스웰 교수(左)와 서명원 신부가 만났다. 법당 앞 마루에 올라간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러곤 차분한 어조로 불교와 기독교의 소통에 대해 말했다. [김경빈 기자]

#불교와 기독교는 통할 수 있을까

버스웰 : 불교의 정신수양, 즉 참선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출가했다. 내겐 인간의 잠재력을 파헤쳐보는 시간이었다. 송광사에서 살 때 가톨릭 신부님 두 분이 나를 찾아왔다. 70년대였으니 서양인이 참선을 하는 걸 무척 흥미로워 했다.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서 신부 : 최근 한국 스님 몇 분이 프랑스 수도원에서 2년간 머물며 수도를 하기도 했다. 기독교와 불교는 서로 배워야 한다. 건성이 아니라 진지한 태도로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

버스웰 : 맞다. 전도나 포교의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면 대화가 안 된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중이 있어야 한다.

서 신부 : “내 종교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내가 진리를 독점할 수는 없다. 상대도 진리를 독점할 수는 없다. 같이 진리를 찾는 거다. 그러니 “상대를 개종시키겠다”는 생각을 조금만 가져도 이웃 종교와의 대화는 거짓말이 되고 만다.

버스웰 : 한국의 가장 근본적인 종교 문제가 뭔가. 다름 아닌 타 종교에 대한 절대적인 이해 부족이다. 불교인은 기독교를 가볍게 보고, 기독교인은 불교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선입견을 해소해야 한다.

서 신부 : 불교도, 기독교도 오랜 전통을 가진 종교다. 두 종교 모두 인류에 기여한 바가 크다. 또 두 종교 모두 사라질 수 없는 종교다. 예수와 석가는 사는 시대가 서로 달랐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안에선 만날 수 있다. 기독교와 불교는 서로 이어질 수 있는 징검다리가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 소통의 걸림돌인가

서명원 신부는 15년째 불교식 참선 수행을 하고 있다. 그게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 충돌하진 않을까. 서 신부의 대답은 달랐다.

서 신부 : 개인적으로 간화선(看話禪) 수행을 하면서 유일신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최후의 만찬을 마친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는 것이 그대들에게 이롭습니다.”(요한복음 16장7절) 기독교 신앙에도 단계가 있다. 초보적인 단계의 사람들은 예수를 붙든다. 그러나 믿음이 깊어지면 예수를 놓아야 한다.

버스웰 : 불교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즉, 모든 상(相)을 뛰어넘으란 얘기다.

서 신부 : 맥락이 통한다. 기독교인이 떠나가시는 예수님을 떠나지 못하게 붙잡으면 곤란하다. 그렇다면 주님과 더욱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가 없게 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제대로 봐야 한다. 그건 예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에게 붙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이 거꾸로 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 주님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오히려 내가 주님을 사로잡으려 한다. 이건 큰 착오다. 기독교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붙드는 것이 아니라 붙들리는 것이다.

버스웰 : 붓다 역시 ‘불교’에 대한 애착을 놓으라고 했다.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과 수행법이 생사의 강을 건너는 뗏목일 뿐이라고 했다. 강을 건넌 뒤에는 그 뗏목을 버리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앎’보다 ‘체험’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붓다도 뗏목에 대한 지식보다 강을 건너는 체험에 역점을 두었던 것이다.

#상상 속의 예수, 체험 속의 예수

버스웰 : 신부님은 왜 예수를 붙들지 말라고 하는 건가.

서 신부 : 하느님의 현실은 언어도단(言語道斷·언어의 길이 끊어짐)의 현실이다. 아무리 말로 표현해도 한계가 있 다. 그러니 예수님을 어찌 알고 내가 잡겠는가? 주위를 살펴보라. 내가 잡은 주님은 내가 만든 주님일 때가 많다. 그래서 기독교인도 모든 상(相)을 벗어야 한다. 이걸 두고 ‘부정의 길’이라고 한다. 이 역시 주님께 나아가는 방법이다.

버스웰 : 나는 승려로 불교를 시작했다. 그러다 불교학자가 됐다. 지금은 참선의 경험을 통해 불교를 연구하고 있다. 불교는 근본적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시선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다. ‘이뭣고’하는 화두, 그런 강한 의혹이야말로 한국 불교 수행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한국 불교에선 그런 의혹이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의 큰 동력이다.

서 신부 : 기독교에선 그걸 ‘부정의 길’이라고 부른다. 주님을 향한 길에는 ‘부정의 길’과 ‘긍정의 길’이 있다. “하느님께서 위대하시다, 자비로우시다”하는 게 긍정의 길이다. 그런데 그 위대함을, 그 자비로움을 인간의 상상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그건 오직 체험을 통해서만 알 수가 있는 거다. 그래서 명상이 필요하다. 명상이 우리를 궁극적인 현실과 하나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불교는 상호보완적

버스웰 : 불교와 기독교가 소통할 수 있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첫째는 불교의 마음공부다. 불교의 수행법이나 참선법이 기독교에서도 명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는 기독교가 사회와 소통하는 힘이다. 한국 불교에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세상과 고립돼 살아온 승려 문화가 있다. 그래서 속세와 원활하게 소통하는 문화가 약하다. 반면 기독교는 더 쉽게 다가가고, 자신의 문화를 더 쉽게 이해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불교와 기독교, 둘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서 신부 : 선(禪) 수행을 한 뒤 성경을 다시 보며 놀랄 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상 생활을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지, 그걸 얼마나 중요시하셨는지 재확인할 수 있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을 때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렸다’(마태복음 3장16절)고 한다. ‘비둘기 모양’은 비유적 표현이다. 예수님은 그때 완전히 마음이 열리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불교를 통해 재발견해야 하는 것은 깨달음의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다. 교리가 먼저가 아니라 체험이 먼저다. 그럴 때 성령 안에서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학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독일이나 로마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해도 성령 안에서 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건 말만 잘하는 장난일 뿐이다. 교리를 전부 외우다시피해도 체험이 없는 거다. 중요한 건 예수님처럼 성령 안에서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버스웰 :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법(法)을 본 사람은 나를 본 것이고, 나를 본 사람은 법(法)을 본 것이다.” 우리는 종교의 형상이 아니라 종교의 본질을 봐야 한다.

서 신부 : 예수님도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복음 14장9절)라고 말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래 모습은 주님의 모상(模像), 즉 주님의 신성(神性)이다. 내가 본래 하느님의 자녀인 것이다.

버스웰 : 이론적 차원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불교와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무엇을 배웠는가, 깨달음을 통해서 불교인이 무엇을 배웠는가를 따져야 한다.

서 신부 : 동감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하나의 종교를 사귀게 된다. 그리고 이웃종교뿐 아니라 인류종교사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고 나의 뿌리를 부인할 필요는 없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또 나는 프랑스인이다. 프랑스어를 쓴다. 모국어가 있기에 제2외국어도 배울 수가 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이란 원판이 있기에 불교를 사귈 수가 있는 거다.

진행·정리=백성호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로버트 버스웰=미국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다. 74년 순천 송광사로 출가, 구산 스님에게서 ‘혜명(慧明)’이란 법명을 받았다. 이후 UC버클리 대학에서 한국 불교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명원 신부=가톨릭 예수회 소속의 사제이자,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다. 의과대학에 다니다가 25세 때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박사논문 주제로 ‘성철 스님’을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