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7주차 강의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Supplement 정도로 인식했던 9주차 강의가 예상 외의 복병으로 밝혀졌다. 세상을 숫자가 기준이 되는 이해득실로 구분하는 경영학도의 입장에서, 철학을 근간으로 하는 '타자(他者)'에 대한 정의와 기준, 그리고 공감이라는 타이틀부터 망설임은 시작됐고, 그나마 현실 세계에서 가장 쓸모 있다는 경영학 마저도 현실 감각을 급격히 잃어가는 마당에, 필자의 선입견으로는 고루하기 그지 없는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2시간 여의 강의는 필자의 기초인문과학에 관한 지식의 부족함을 후안무치하는 시간이었다.
강의 자체의 이해가 부족해서였을까. 결론적으로는 분명한 답을 얻은 시간은 아니었다. 자비를 베푼 사마리안의 일화로 대표되는 타자에 대한 배려, 쉽게 말해, 이웃사랑의 실천에 대한 고민은 그 가치가 기독교를 대표하는 '사랑' 의 표본이며, 그것이 기독교인으로써의 우선 목표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정도였다. 이미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깨달았고, 무엇을 할지를 결정해서였을까. 엠마뉴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라는 접근 도구 역시 세상풍파에 찌든 경영학도의 입장에서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순수학문, 기초인문과학에 무지한 필자의 한계이다.
예상외의 성과는 질문 시간에서 건져냈다. 우문현답. 아브라함 코이퍼(Abraham Kuyper)의 영역 주권론을 얻었고, 관련된 논문과 서적을 통해 필자가 지난 8주차에 완성했던 본인 스스로의 비전에 있어 부족함을 채울 수 있었다. 코이퍼는 하나님께서 국가, 학교, 교회 등에게 각각의 영역 주권을 부여했으며, 이 주권들은 동등하고 특별한 주권이므로 서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인본주의 계몽주의자들이 주창한 사회계약론을 거부하며, 모든 권력은 사람 간의 계약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연결하여, 세상의 세속적인 방식으로도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일반은총론 역시 흥미로웠다.
코이퍼의 영역 주권론은 현대 사회에서의 '나'의 역할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를 씌워준다고 느껴질만큼 따뜻했다.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비전에 대한 고민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보험을 얻기 원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영역에서 고수해야 하는 가치들이 하나님께서 각기 부여한 것이며, 상호 간의 존중을 통해 일종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코이퍼의 논리는 종신보험까지는 아니어도 상해보험 정도의 가치로 다가왔다.
역할성의 범위를 규정한다는 것은, 필자 본인의 비전이 소속되는 집단 역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주권이 존재하며, 해당 영역에서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경외를 기반으로 하는 비전의 탐구, 갈망이 절대 아버지를 욕되게 하거나, 혹은 그 비전의 끝이 아버지께 날선 창끝이 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안심보장서비스에 가입한 느낌이라고 할까.
타자에 대한 구분과 공감 방법, 목적과 이유 등 다양한 토론 주제들이 쏟아졌지만, 필자의 포커스는 위와 같았다. 필자에게 주어진 역할에서의 최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타자, 타 영역과의 공감 그리고 존중. 그것이 필자 본인이 깨지고 다듬어져야하는 이유이며, 비전 위에서의 기독교인으로써 바로 서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강의 자체의 이해가 부족해서였을까. 결론적으로는 분명한 답을 얻은 시간은 아니었다. 자비를 베푼 사마리안의 일화로 대표되는 타자에 대한 배려, 쉽게 말해, 이웃사랑의 실천에 대한 고민은 그 가치가 기독교를 대표하는 '사랑' 의 표본이며, 그것이 기독교인으로써의 우선 목표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정도였다. 이미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깨달았고, 무엇을 할지를 결정해서였을까. 엠마뉴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라는 접근 도구 역시 세상풍파에 찌든 경영학도의 입장에서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순수학문, 기초인문과학에 무지한 필자의 한계이다.
예상외의 성과는 질문 시간에서 건져냈다. 우문현답. 아브라함 코이퍼(Abraham Kuyper)의 영역 주권론을 얻었고, 관련된 논문과 서적을 통해 필자가 지난 8주차에 완성했던 본인 스스로의 비전에 있어 부족함을 채울 수 있었다. 코이퍼는 하나님께서 국가, 학교, 교회 등에게 각각의 영역 주권을 부여했으며, 이 주권들은 동등하고 특별한 주권이므로 서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인본주의 계몽주의자들이 주창한 사회계약론을 거부하며, 모든 권력은 사람 간의 계약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연결하여, 세상의 세속적인 방식으로도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일반은총론 역시 흥미로웠다.
코이퍼의 영역 주권론은 현대 사회에서의 '나'의 역할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를 씌워준다고 느껴질만큼 따뜻했다.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비전에 대한 고민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보험을 얻기 원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영역에서 고수해야 하는 가치들이 하나님께서 각기 부여한 것이며, 상호 간의 존중을 통해 일종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코이퍼의 논리는 종신보험까지는 아니어도 상해보험 정도의 가치로 다가왔다.
역할성의 범위를 규정한다는 것은, 필자 본인의 비전이 소속되는 집단 역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주권이 존재하며, 해당 영역에서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경외를 기반으로 하는 비전의 탐구, 갈망이 절대 아버지를 욕되게 하거나, 혹은 그 비전의 끝이 아버지께 날선 창끝이 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안심보장서비스에 가입한 느낌이라고 할까.
타자에 대한 구분과 공감 방법, 목적과 이유 등 다양한 토론 주제들이 쏟아졌지만, 필자의 포커스는 위와 같았다. 필자에게 주어진 역할에서의 최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타자, 타 영역과의 공감 그리고 존중. 그것이 필자 본인이 깨지고 다듬어져야하는 이유이며, 비전 위에서의 기독교인으로써 바로 서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사회적 리더십을 말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의후기] 그리스도인, 당신의 공감능력은? 타자와 공감하기 (3) _권인호 (1) | 2009.05.28 |
---|---|
[관련정보] 우리의 마음 안에선 예수와 석가가 만날 수 있지요 (1) | 2009.05.26 |
[강의후기] 9주차 수업을 듣고- 이OO (0) | 2009.05.23 |
[강의 후기] 두번째 미션 - 타종교와 대화하기 [정보영] (0) | 2009.05.22 |
[강의 후기] 첫번째 미션 - 다양한 현장 조사 발표 [정보영] (0) | 2009.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