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두의 생각을 합친 것만큼이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결국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애당초 정의 내릴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내가 내려야 할 답일 것이다.
차이의 아름다움. 우리는 차이를 아름다움으로 여기고 있을까? 질문을 바꾸어 보자. 우리는 차이에 익숙할까?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차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유지하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습성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차이를 인정하거나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일은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예전의 나는 그동안 자연스럽게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나와 취향이 맞지 않는 사람은 왠지 불편했다. 나와 맞는 사람과 만나려고만 했다고 할까? 하지만 나는 많은 경험을 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했고, 다름을 즐기려는 노력을 했다. 그 결과 좀 더 즐거운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익숙한 생각에 의문을 던져보자. 왜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해야 하는가? 왜 나와 다른 것에 귀 기울여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나는 먼저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사실 이런 질문들은 대사리 아카데미의 2주차에서 다루었던 주제, 창의성과 매우 연관이 깊은 것이다. 우리에게 창의성이 필요한가? 이 질문을 뒤 집어 이야기하면 차이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 스스로도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는 것에 대해 그것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유용함만 누렸을 뿐, 그것의 의미를 납득하거나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그것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접했던 것 중에 과학도 있었다. 과학이라는 것은 복잡한 것에 대해 어찌 보면 단순한 답을 내릴 수 있는 학문이기에,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진화론과 종의 생존 과정에서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이런 이론들은 사회 구조에도 적용되었다. 어쨌든 나는 그동안 이타주의나 개인주의, 사회의 구원이라는 애당초 정의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을 했었다.
조너선 색스가 쓴 ‘차이의 존중’(원제 : Dignity of Difference)은 한 종교의 지도자인 저자가 자신의 종교적 믿음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해 쓴 책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문명이 충돌하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과 종교의 도덕을 통해 공존하는 세계로 갈 수 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문에서는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 문제를 이야기하고, 서양 철학에 토대가 되는 플라톤의 사상에서 도출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그 다음부터 저자는 사회정의, 시장 경제, 교육 제도, 시민 사회, 환경 문제 등의 이슈에서 어떠한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도 ‘팃포탯’ 같은 사회 생물학적 이론을 언급했다. 사회 생물학적으로 호혜적 이타주의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도 언급한 것처럼 이런 과학적 분석 방법을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과학은 언제나 예외의 경우가 있으며, 과학은 바로 그 예외의 경우를 배제하고 현상을 일반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만 그럴까. 과학과 종교는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일컬어지지만, 그 자체가 강력한 믿음과 가치관을 토대로 현상을 설명 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책의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저자의 말이 ‘공자님 말씀’처럼 들리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매우 이상적인 주장이고, 양시양비론으로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입장이다. 옮긴이는 이런 점에서 저자의 주장과 ‘관용’의 의미를 비교해 본다. 관용이 ‘내가 틀린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바탕을 둔 가치라면, 저자의 논리는 자신이 ‘옳음’에 대해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책은 방법서가 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에 대해 옮긴이가 말한 것처럼, 저자는 유대교 전통에서 나온 개념들(체다카, 언약, 시장 친화적 태도 등)을 말하고 있다. 어찌 보면 문명 간의 훌륭한 화해의 협상책을 만들어 놓은 느낌이 든다. 자신의 믿음을 토대로 사회를 설명해 낼 수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기회였다.
본문 113쪽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자연 환경이 생물다양성에 의존하듯 인간 환경도 문화 다양성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하나의 문명도 전 인류의 정신적, 윤리적, 예술적, 표현을 모두 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 하나의 존재가 얼마나 편협한지 깨닫기만 해도 신의 뜻이라는 것이 내 머릿속에서 완성된다는 무모함을 가지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나 불완전한 감각에 의존하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지 않나? 결국 모두의 생각을 합친 것만큼이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결국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애당초 정의 내릴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내가 내려야 할 답일 것이다.
[차이의 존중] : -조너선 색스 저, 임재서 역, 『차이의 존중』, 말글빛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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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작성 : 권 인 호(대사리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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