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 출퇴근 시간 복잡한 신도림역 지하 환승 통로에서 온 몸에 배너를 두르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던 무명의 아저씨,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사람들의 왕래가 복잡한 길 한복판에 트라이앵글을 박아놓고 교회에 나와 구원 받으라고 확성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외쳐대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면서, ‘저 사람처럼 행동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행동하지 못하는 크리스천이었던 나와 세상에 하나님을 외쳐대는 그들과의 거리감은 크리스천이라는 공통점의 거리와는 비교 되지 않을 만큼 답은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벌써 십 년이 지난 지금, ‘리처드 마우(Richard J. Mouw, right photo)’의 ‘무례한 기독교(Uncommon Decency)’를 읽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데자뷰(Deja vu) 아닌 데자뷰를 느꼈다. 마우는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어쩌면 무심해진 나의 고민에 꽤 명쾌한 답을 던져주었다. “조용한 지하철에서 복음을 전한 사람은 강한 신념을 지닌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세상 기준으로 볼 때에는 예의가 없다. 만약 그 공간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만 본 크리스천이 있었다면 예의는 바르지만 강한 신념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현대를 사는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진정한 도전, 바로 신념 있는 ‘시민 교양(Convicted Civility)’을 계발하는 일이다.”
급격한 현대 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서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반인은 물론 크리스천들 역시 일상적인 공손함과 예의를 잃어가고 있고, 그 결과 일반인들과의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기에 그는 진리를 향한 강한 열정을 갖고, 그것을 품은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확고한 신념과 시민 교양을 갖춘 크리스천으로 거듭나야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역할성을 가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무례한 기독교의 내용 중 재미있는 고민이 하나 있다. ‘찰스 큐란(Charles Curran)’이 겪은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한 ‘복잡함과 모호함’의 정의이다. 그는 크리스천으로써 겪는 사회적 고민들의 쟁점은 종종 복잡하고 모호하며, 그렇기에 반대자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경청하고, 성급하게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신념에 대해서는 다소 순진하고 원색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며, 이를 도덕적 단순함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도덕적 단순함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바로잡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열린 자세를 수반한다면 이것이 곧 성화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다원주의에 대해 논한다. 다원주의가 기독교적 관점에 있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사회적 문제들에 다수의 대안을 인식하는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또한, 그 선택에 있어 일종의 여유를 가짐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고민과 기회에 노출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마지막으로는, 시민교양의 특징들을 언급한다. 개방성, 참을성, 융통성, 잠정적 입장, 겸손함, 경외감, 소박함 등 긍정적인 이미지의 단어들로 표현되는 특성들을 이해하고 체득할 때에 각 객체들간의 융화로서 사회에서 소통될 수 있는 시민교양을 형성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 크리스천으로서의 사회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결론 진다.
책을 읽는 동안 마우가 설명하는 문제제기 방식 및 대책, 개선 방안 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평소 개인적으로 고민해왔던 부분들에 대한 시원한 답들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크리스천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고민이 무엇(What)이 아닌 어떻게(How)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깊은 공감을 했다. 단, 개인적인 비전에 있어서는 무엇을 하느냐가 설정되지 않은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지만.
정독을 하고 난 후 여러 물음표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사실 수많은 기독교 교양 서적들처럼 마우 역시 그 과정을 어떻게 준비할 것이며, 그에 필요한 구조, 시스템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지, 그것이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방법론이나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 못했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풀러를 보면 그는 그 정도의 기획력은 있는 사람이니까 – 물론, 그것들이 제시됐다 하더라도 한국 개신교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부분일지의 고민을 새롭게 얻었고, 교양 보다는 급진적 행동이 더욱 더 빠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한 발 앞서 나간 궁금증도 생겼다. 단, 본 대사리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아가면서 저가 찾아야 할 목적성과 분명히 해야 할 목표 등에 쌓여 있던 어두컴컴함이 아주 조금은 걷힌 느낌이다. 좋은 견해가 있고, 뒷받침할 근거들 역시 탄탄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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