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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대장정

[서평] 회심_ 강지혜


짐 월리스. 소저너스의 편집장으로서 복음과 상황에서 그의 글을 조금씩 맛보기로 보아 왔었다. 짧은 글로는 그가 어떠한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없었다. 그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와중에 나온 그의 책<회심>은 참 반가운 책이었다.


회심.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믿는 자에게서 회심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회심(回心)이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명백한 무엇인가가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 같다. ‘나는 과연 회심했었던 걸까’ 자신조차도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시시때때로 변하고, 작심삼일을 일삼기 때문이다.

전도할 때에도 핵심은 회심으로의 초대인데, 회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부터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 때 나의 말엔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전도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이 책을 통해서 회심에 대해서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하다.


회심은 하나님께로 지적 변화 이상의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 돌아서는 것이다. 또한 회심은 인격적인 사건이나 결코 사적이지 않다. 나에서 시작하지만 역사 내에서 발생하며 실제 세상을 위한 사건이다. 우리는 복음 전도에서도 죄와 구원의 사회적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회심의 의미를 되새긴 후에는 현재 회심자들의 삶이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배반의 원인과 해결을 모색했다. 이어서 회심자로서 마땅히 고민해야 될 문제들을 챕터별로 살펴보았다. 가난과 불의의 문제, 전쟁과 평화의 문제, 비전과 공동체의 문제, 참된 예배의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문제에서 우리가 세상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인 예수 부활의 승리를 되새길 수 있었다.


회심이라는 것은 정적이지도 않고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회심은 변화의 순간이자 과정이라는 것이 내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의 나의 연약함과 무력함에도 내 안에서 새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회심의 과정을 인도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믿음이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회심하고 또 회심하겠지만 그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더 순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가장 가슴 설레며 읽었던 부분이 비전과 공동체에 관한 부분이었다. 찜질방 멤버들에게는 얘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현재의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비전과 공동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형식의 교회 공동체에 직접 몸담고 계신 분의 이야기가 의미있게 다가왔다. (역시 말의 설득력은 삶의 고백일 때 막강한 것 같다.)

내가 예수님꼐로 회심을 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그리고 그 이후로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들이 있다. 처음에 회심하고 1~2년 정도까지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만으로도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고 설레여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첫사랑의 기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불같이 타오르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감정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이전에는 공동체의 의미도 그저 사랑을 주고받는 그 순간의 함께하는 기쁨만으로도 납득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 이상의 의미가 필요했다. 나를 좋은 공동체에 인도하여 주신 것은 감사하고 나는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사랑도 받은 건 사실이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가히 공동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 내가 공동체에 계속해서 남아있어야 될 이유는 뭘까? 그저 내가 받았으니까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전통을 이어가야 해서? 그런 이유로는 내 안에 열정과 소망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목적 아니, 애초에 나를 부르신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성취’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성취는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명 공동체의 모습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모습을 달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처한 시대와 환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단순간에 머릿속에서 개념이 자리잡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천천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배움의 기회들을 허락하여 주셨다. 그리고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를 이해하게 될수록 나는 공동체가 희망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 성경적으로도 많은 근거를 들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나의 삶의 고백이다. 논리적으로 이러이러해서 이렇다-는 것보다 공동체 때문에 웃고 울었던 나의 삶이 하는 말이다. (물론 성경의 근거는 나의 삶이 하는 말을 판단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느낀다. ‘어떤 공동체를 어떻게?’ 의 문제를 두고 요즘은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 큰 그림만 그려보고 있는 상태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삶 공동체’가 되야한다는 생각이다. 갈 길은 멀지만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길을 내 아집과 소견 때문에 돌아가지 않도록 늘 하나님과 친밀하고 두터운 관계 속에 거해야겠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전적인 순종과 헌신이 나오는 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