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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리더십을 말하다

[강의후기] 문화적 다양성 시대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남기 (2) _신상린

먼저, 금번 대사리의 커리큘럼을 기획하심에 감히 하나님의 뜻이 임하셨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사람의 손길을 담당하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완벽한 코스웍이었습니다. 창의와 소통에 관한 정의 위에, 이해와 배려라는 현실을 세우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써의 방법과 그것을 이행하기 위한 수단을 고민케하는 강의들이었습니다. 사실상 9주차의 강의가 타자와의 교류를 통해 8주차에 세운 결론을 다듬는 순서라고 예상해봅니다. 저는 결론이 났네요.

6주차 필드 스터디를 위한 현장 방문을 마치고, 자정을 넘긴 시간 기사 식당에 모여 당일 느낀 점을 나누던 우리 조원들에게 저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복음이 뿌리와 같다면, 내가 강조하는 것은 몸통과 줄기이다. 세상은 뿌리를 바라보지 못하기에 난 세상이 바라볼 수 있는 몸통과 줄기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으로써, 내가 믿고 의지하는 종교가 세상의 지탄을 받고 심지어 개독교라는 비하를 듣는데도, 현실을 모르고 사회와의 소통을 부르짖고 영성을 강조하는 한심한 작태들을 저는 증오해왔습니다. 특히 세상의 한심한 식견 수준도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 기독교의 시선이 겨우 교회 울타리 밖도 넘기지 못하는 데에 염증을 느껴왔고, 결국 낙심의 절벽 밑으로 떨어졌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다시 한번 붙잡아주신 - 혹은 끝끝내 놓아주시지 않았던 - 아버지의 손을 다시 붙잡을 수 있었고, 훌륭한 신앙의 선후배들 사이에서 저의 믿음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가 다시 찾은 비전의 결과, 근 10년 간의 직장 생활을 마감하고 학업의 길로 돌아올 수 있었고, 단 6개월이 허락된 고국에서 다시 기윤실을 만나 대사리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의 비전 구석구석 놓여져 있던 여러 불안, 고민들과 현실들을 체감했고, 그 결과 작금의 결정 앞에 놓이게 됐습니다.

이에 가장 큰 단초는 단연 7주차에 있었던 임성빈 장신대 교수의 강의입니다. 7주차 서평에 썼던 것처럼 저는
시류에 휩쓸려 공명심을 발휘하기 보다는 시류를 파악해 나의 게임을 하는 것이 옳다고 믿어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은 돌리지 못할 망정, 욕은 안드시게 하는 방법이라 믿어왔고, 그것은 저 자신에 대한 주제 파악의 결과였습니다. 이는 성경에 대한 이해와 공감, 학습, 탐구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 아버지와의 불안한 관계 역시 - 수많은 모태신앙인들과 남들이 칭찬해주는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갖는 유사한 고민들처럼 - 저가 감히 아버지의 뜻을 품고 말하고 펼치기에는 불안하다고 여겨왔습니다. 이런 밑천으로 무언가를 목표로 해서 이룬다고 해도 누구꼴 나기 쉽상이라고. 그래서 이러한 고민이 더 깊어지기 전에 신학에 대한 니즈를 해결해야 한다고 결정했고, 2011년 가을 신학 학업을 계획해왔습니다.

금번 7주차 강의는 사실상 위에서 언급한 모든 고민의 가뭄을 단 한번에 해갈해주었습니다. 임성빈 교수가 말한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종교 가치 및 의식, 심지어 인식의 변화를 저는 오해하고 있었고, 또한 죄성이라는 것이 저를 덮쳐올 때에 그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보장 없이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옥스브리지에서의 M.Div 가 그 보장을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심리적, 사회적 방어막은 쳐주지 않을까 하는 자위에서 시작한 니즈에 대한 오해도 있었습니다. 강의 이후 내딛은 결론은 다시 한번 저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달란트에 대해 솔직한 접근과 냉철한 비판, 그리고 빛낼 수 있는 것에 대한 극대화입니다. 저의 신앙을 늘 신학으로 검증하는 것이 아닌, 문화와 윤리와 아버지와의 관계로 다시 검증 받아 저 자신이 세상에 내놓기에 떳떳할 때에 세상에 내놓을 계획입니다.

저가 가진 비전과 아버지의 계획하심이 함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가 가진 달란트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고, 그렇기에 저가 해야 할 일은 절치부심(切齒腐心)으로 일궈내기만 하면 되니 오히려 간단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헤메인 시간이 아쉬어오기에 더욱 분하게 여겨야 하지만, 감사함에 한숨이 나오는 건 왠지 아버지께서 살짝 웃어주시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삼십이립(三十而立) 세상에 내놓기에, 그리고 아버지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들이 되도록, 그리고 아버지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자랑스러운 아들되도록 노력하려합니다. 윌퍼포스(William Wilberforce) 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버지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에 저의 달란트들이 쏟아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과 수단에서도 기도로써 준비하고 실행하는 그리고 응답받는 저가 되려 합니다.

참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주신 임성빈 교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