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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리더십을 말하다

영화 "다크 나이트"와 "사회적 리더십" (강언)

작년 여름에 영화를 보고서 적은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적 리더십을 드러내어야 하는 이 시대는 성경이 말한 말세의 때입니다. 악한 구조 속에서 의롭게 살아가려고 마음 먹은 사람도 바보가 되거나 악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람이 되기 쉬운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 함께 더 고민하는데 밑의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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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눈으로 영화읽기: 《다크 나이트》

말세의 때에 어떻게 살 것인가?


말세의 고통

디모데후서 3장에서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을 언급하였다. 이 말씀을 확증이라도 하듯이 세상은 점점 고통이 커져 가고 있다. 말세의 고통은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부조리함이다. 의인이 고통 받고, 악인이 활개를 치는 삶의 부조리는 우리네 인생에서 넘쳐나고 있고, 삶의 날이 더해갈수록 인생의 부조리한 단면도 더 알게 된다.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통에 반응한다. 순응하며 살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고, 어떤 이들은 세상을 저주하며 세상을 망치려 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는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의 면면을 보여준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과 세상을 혼돈 가운데 몰아 넣으려는 사람. 배트맨과 조커는 말세의 고통을 대하는 양 극단인 것이다.

“영웅으로 죽거나, 결국엔 스스로 악당이 되는 거지”



조커는 과거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입이 찢어진 상처를 설명하는 말을 통해, 그가 겪은 고통을 추론할 따름이다. 아버지가 칼로 입을 찢은 것이나 자신이 스스로 입을 찢은 것이나 둘 다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인생의 고통을 경험했고, 온 세상을 혼란과 절망에 빠뜨리는 혼돈의 사도가 되어 버렸다. 그는 돈이나 권력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며 진정한 악의 구현을 위해 투신한 사람이다. 또한 조커는 인생과 사람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안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착하게 굴 뿐이며, 실상은 내재된 자기 중심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온갖 부패와 범죄와 얼룩 진 고담시의 시민들은 조커가 벌이는 사건 사고를 통해 본성의 추악함을 드러내고 만다. 고담시민들은 자신의 안녕을 위협하는 조커에 대해 분노하기보다 조커가 내세운 희생제물을 찾느라 혈안이 된다. 악에 대항하여 싸우기보다 나의 안위를 보장받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악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피하려고만 할 뿐, 악을 제어하거나 제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자신을 악한 상태로 밀어 넣는다. 그것이 조커가 가장 바라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지방 검사 하비 덴트는 정의감이 가득한 정의의 사도였으나 조커에 의해 애인이 죽자 그는 이름 그대로 “투 페이스”가 되어 자신의 분노를 무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결국 정의의 사도였던 그도 자신이 인생의 부조리에 직면했을 때, 조커의 방식을 따라간 것이다. 하비 덴트는 자신이 한 말대로 결국 “스스로 악당이” 되어 버렸다.

세상의 악한 구조는 절망의 사람들을 양산해 낸다. 정말 세상이 망해 버리길 바라며 세상을 향해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로 세상이 점점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커가 사람들을 향해 내뱉는 말들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인생은 부조리하고 절망과 분노를 쏟아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어떤 음성을 들을 것인가?


배트맨은 하비 덴트가 저지른 모든 악행을 뒤집어 쓰며 “어둠의 기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배트맨이 가지고 있는 도덕률과 자신의 명예 가운데 도덕률을 선택한 것이다. 악의 화신인 조커는 하비 덴트를 “투 페이스”로 만든 것처럼, 배트맨도 절망 속에 악행을 저지르도록 유도하고 싶었을 것이다. 악은 절망 속에서 사람들이 더욱 더 절망에 빠져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더욱 더 모질게 행동하여 그 사회 전체가 더욱 악해지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결국 스스로 악당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하지 마라. 사회가 악해지더라도,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억울함이 있더라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기를 바라시는 분이 계시다. 하나님은 상황에 매몰되는 하나님이 아니며,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시는 분이시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두 가지 음성이 들려오고 있다. 상황에 매몰되기를 바라는 조커의 음성과 상황을 넘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을 귀 있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