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라는 타자에 대한 강의는 나에게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그만큼 아는것도 없었고 , 사실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 말 그대로 무관심, 그 자체였다.
내가 사는 세상에는 적어도 나의 활동 영역에는 소수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수자는 다른 저멀리 어딘가가 아닌 내안에도 살고 있었다.
나의 바로 옆에 있었고, 내가 손만 뻗고 눈만 돌리면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곳에 그들이 있었다.
가장 마음에 남았던 목사님의 말씀은,"나" 역시도 소수자라는 사실이었다.
이번주 , 소수자의 현장 조사 미션을 위해 다녀온 광야교회 자정 예배에서 본 노숙자들, 그리고 '다르게 사는 사람들' 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을 보고 느끼면서... 세상에는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 있구나, 이들이 사회적 다수의 기준에 부합되지 못해 입었을 상처들과 수많은 부당한 일들을 모두 하나하나 다 이야기 할수나 있을까. 또 그 다수속에 속해있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수자의 입장에 처하지 않기 위해 (그런 사회적 대우를 받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가..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 처음부터 장애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시작하고 싶다.
사전적 장애는 "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
이라고 한다.
예전에 본 광고의 한장면이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수화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말을 못하는 것이아니라, 말하는 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걷지 못하는것이 아니라, 걷는 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라는 아주 오래전 광고였는데 이문구는 아직도 내마음을 떨리게한다.
다름과 disabled는 그인식이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완전히 가능성을 배재한 듯한 말투이지 않은가!
목사님께서 처음부터 말씀하셨듯이 장애에 대한 편견에서 모든것이 비롯되는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시작이 어디였는지도 알수없듯이 너무 일반적 이라는것이다. 이러한 낡은 사고방식을 깨기 위해선 왠만한 다짐가지고는 인식을 새롭게 하기가 힘들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인식을 위해 내가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직접 그들과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주 기초적인 교육을 시작할 때부터 비장애인(소수자들)과 장애인을 구분하지 말고 함께 사는 세상을 가르쳐야한다.
사회가 그들을 묵언격리 시켜놓았으면서 , 그들이 세상에 나오면 희한하게 혹은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런 관점 자체가 달라져야한다.
난 개혁이라는 것과는 친하지 않아서 어디서 부터 해야할지 잘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대한민국의 대학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24년간 내안에 자리잡은 사회적 다수의 시선에서 탈피해 그어떤 상황이라도 수용하고 공감하는 소통의 능력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겠지만, 하나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겠지만, 이런 작은 시작들이 모여 점점더 나은 내일이 되지 않을까?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8
너희는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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