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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리더십을 말하다

[강의 후기] 말이 통하는 소통의 사회적 리더십 (5) _권인호




"통하였느냐?"


 ‘스캔들(2003)’이라는 영화에 나와 유명해진 이 말. 우스갯소리로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 말, 중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통(通)하면서 살고 있을까? 때로 우리는 통하지 않는 답답한 삶 속에서 살아간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친구, 말없이 서로 부대끼는 출근길 지하철, 말 안 듣고 시대와 반대로 가는 정부의 정책 속에서 우리는 답답함을 느낀다.

 

 통한다……. 존재와 존재가 서로 통할 수 있는 것, 즉 소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자, 존재의 본질적인 요소인 것 같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다. 땅은 우리의 육체와 동일시 될 수 있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스스로를 정복하는, 소통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인간이란 존재가 이 세계 속에서 주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주체가 되었다는 것은 곧 독자적인 개체로서 세상과 소통하고 관계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소통’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소통의 어려움 또한 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의 업(業)이다. 창세기 11장 9절에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은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소통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함으로써 완전한 소통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 소통은 하나님과 나의 소통이 될 수도 있고, 이 세계와 한 존재의 소통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소통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대사리의 세 번째 시간은 ‘말이 통하는 소통의 리더십’이라는 이름으로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이의용 교수의 강의로 시작되었다. 처음에 이의용 교수는 소통의 능력으로 세 가지를 정리했다.


➊ 전문가 - 전문능력

➋ tool - 효과적인 일을 위한 도구를 다루는 능력

➌ SQ(Social IQ) -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 능력

 
중간에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의 경우를 서로 나누어보고 이에서 더 나아가 비신자와 상대되는 신자의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 나누었다. 이런 내용들은 독서 과제로 제시되었던 리처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 조너선 색스의 ‘차이의 존중’ 같은 저서들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의를 들은 나의 느낌은 이 저서들을 읽은 느낌과 비슷했다. 마치 ‘공자님 말씀’처럼 당연한 얘기인 것이다. 소통의 중요성과 그 방법에 대해서는 매우 공감했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던져지지 않았다. 오늘날 기독교가 ‘공격적 선교’, ‘성시화운동’ 등으로 인해 사회적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이런 소통의 지혜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소통의 방법론은 오히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기독교계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뀐다. 먼저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그 다음에 사회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교수님의 말 중에서 communication과 relation이 순환되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했다. 소통(communication)은 관계(relation)로 이어져야 한다. 관계없는 소통은 의미가 없는 소통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바로 목적이다. 목적 없는 관계는 의미가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를 찾기 위해 관계를 만든다. 이의용 교수의 강의는 소통에 관한 아주 유용한 'tool'을 제시했지만, 소통의 목적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이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특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들에게 관계의 목적성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어찌 보면 이의용 교수가 강조한 대학교 때 키워야 할 SQ라는 것이 대부분 경쟁 관계인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팁(tip)처럼 보인다.

 

 나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바로 손해를 봐야 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교수님이 제시한 관계회복을 위한 5가지 팁에서 나는 예수님의 일생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예수님은 분명 손해 보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가하는 당위성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찾아가야 할 신앙과 신념의 문제다. 나는 비록 길진 않지만 굴곡 있는 삶에서 미래를 위한 작은 손해가 나의 이익임을 터득했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유용한 삶의 비결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나는 아직 이 질문에 신앙으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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