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두 번째 미션인 타종교인과 대화하기를 발표하는 날이었습니다.
저희 조에서는 서울에 있는 봉은사에 가서 거기서 근무하시는 종무님과 인터뷰를 했구요, 미셜발표까지 잘 마쳤습니다^^
나머지 2개 조는 천주교와 이슬람교인과 인터뷰를 해서 발표했답니다.
아래는 미션발표 후 생각해보게 된 것을 적어봅니다.
이번 미션발표를 통해서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세 가지이다.
1. 이슬람이 과격한 모습으로 어필되는 것은 교리때문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로 인한 문화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제국주의를 행한 국가들 중에 소위 기독교 국가가 있다는 것. 충격이었다.
그들의 과격한 모습을 탓하기 전에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
나는 그들이 강대국들로부터 수탈과 핍박을 받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심 자살테러를 선동하는 교리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것에 책임을 돌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알고보니 절대다수가 믿고 있는 이슬람은 관용의 종교라고 한다.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을 최상의 가치로 둔다고 한다.
종교인으로서 나 또한 내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차가운 마음을 가졌었던가. 차가운 마음으로 변해버린 나와 그러한 마음을 갖게 한 상대방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가 과연 가능할까.
하나님께서 내 주변에 무슬림을 비롯한 타 종교인들을 많이 두지 않으신것은 내가 너무나 그들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절대로, 타종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겠다. 타종교의 드러나는 몇몇 부분들만 단순화해서 비판하지 말자.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타종교와의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자체로, 말씀으로 승부하자.
2. 천주교에 대해서 전보다 조금 더 교리적으로 멀어짐을 느꼈다.
나는 천주교는 교리적으로는 기독교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정도로 단순한 문제였다면 굳이 천주교와 기독교가 분리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은혜'에 대한 시각이 우리와 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신교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그 무엇보다 앞설 수 없는 것인데,
천주교에서는 행함과 은혜가 같이 간다 하였다. 여기까지는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행함없는 믿음은 가라지같은 믿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가 행함보다 앞설 수도 있다'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은혜가 행함보다 '앞선다'가 아니라 '앞설 수도 있다'라니?
핵심 '예수님을 구주로 생각하는 것'만 같으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천주교에서도 '결국엔'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러한 믿음까지 나아가는 길이 순탄치 않다.
연옥(천국에 갈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씻는 곳이라 한다)의 존재로 인한 예수보혈의 공로를 온전히 믿지 않을 위험.
대죄와 소죄를 나눔으로 죄의 대소를 나누는 것도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간음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죄의 기준에 어떻게 부합하게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3. 다름을 어느 선까지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너와 믿는 것은 다르지만, 나와 믿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너를 존중하지 않는 일은 없을거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머리로는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라도 태도로는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인정이라기 보다는 존중의 표현이다.
나와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나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같이
같은 비전을 꿈꾸며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내가 나와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나눌 수 없는 것을 꿈꾸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안타까움으로 남는 일이지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모욕하거나 존중치 않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1. 이슬람이 과격한 모습으로 어필되는 것은 교리때문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로 인한 문화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제국주의를 행한 국가들 중에 소위 기독교 국가가 있다는 것. 충격이었다.
그들의 과격한 모습을 탓하기 전에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
나는 그들이 강대국들로부터 수탈과 핍박을 받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심 자살테러를 선동하는 교리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것에 책임을 돌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알고보니 절대다수가 믿고 있는 이슬람은 관용의 종교라고 한다.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을 최상의 가치로 둔다고 한다.
종교인으로서 나 또한 내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차가운 마음을 가졌었던가. 차가운 마음으로 변해버린 나와 그러한 마음을 갖게 한 상대방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가 과연 가능할까.
하나님께서 내 주변에 무슬림을 비롯한 타 종교인들을 많이 두지 않으신것은 내가 너무나 그들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절대로, 타종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겠다. 타종교의 드러나는 몇몇 부분들만 단순화해서 비판하지 말자.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타종교와의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자체로, 말씀으로 승부하자.
2. 천주교에 대해서 전보다 조금 더 교리적으로 멀어짐을 느꼈다.
나는 천주교는 교리적으로는 기독교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정도로 단순한 문제였다면 굳이 천주교와 기독교가 분리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은혜'에 대한 시각이 우리와 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신교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그 무엇보다 앞설 수 없는 것인데,
천주교에서는 행함과 은혜가 같이 간다 하였다. 여기까지는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행함없는 믿음은 가라지같은 믿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가 행함보다 앞설 수도 있다'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은혜가 행함보다 '앞선다'가 아니라 '앞설 수도 있다'라니?
핵심 '예수님을 구주로 생각하는 것'만 같으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천주교에서도 '결국엔'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러한 믿음까지 나아가는 길이 순탄치 않다.
연옥(천국에 갈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씻는 곳이라 한다)의 존재로 인한 예수보혈의 공로를 온전히 믿지 않을 위험.
대죄와 소죄를 나눔으로 죄의 대소를 나누는 것도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간음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죄의 기준에 어떻게 부합하게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3. 다름을 어느 선까지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너와 믿는 것은 다르지만, 나와 믿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너를 존중하지 않는 일은 없을거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머리로는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라도 태도로는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인정이라기 보다는 존중의 표현이다.
나와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나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같이
같은 비전을 꿈꾸며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내가 나와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나눌 수 없는 것을 꿈꾸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안타까움으로 남는 일이지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모욕하거나 존중치 않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대사리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도 수업 마지막 주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서
안팎으로 많이 분주합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이 시간에 많이 쫓기는 것 같아요.
제가 시간에 쫓기지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제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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