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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대장정

[서평] 다르게 사는 사람들_ 강지혜

책을 덮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책에서 나온 다르게 나온 사람들 중에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있는가?’였다.

사이버 코뮤니스트로 나온 사람 정도일까, 그마저도 나는 사이버 상에서 얼마나 커뮤니케이팅하고 있느냐를 생각해 봤을 때에 가깝다고 말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는 느낌이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 소수자들은 들어올 공간이 없었는가, 아니면 내가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던 것일까. 둘 다 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내가 어렸을 때부터 소수자들과 가까이 하는 삶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면, 나는 ‘당연하게’ 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 거다. 물론 이게 모든 문제의 해법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우리’의 문제에서 ‘그들’의 문제로 바뀌는 순간, 오해와 몰이해가 생기게 된다. 나와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 어찌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로 인한 소통의 불능. 소통이 없는 곳엔 반목과 다툼이 깃들고 이는 약자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우리’와 ‘그들’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너무도 죄스러운 것은 줄곧 상처를 입히는 것은 ‘우리’였는데, 늘 화해의 시도는 ‘그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움켜쥐고 다시금 손을 내밀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을까. 그래도, ‘그들’을 ‘우리’로 생각하는 다수 중의 ‘소수’가 있었기에 그들은 다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막연하게 나와 다른 사람들도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막연한 존재들을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 모호한 것이었다. 그것은 허울 뿐이 되기 십상이었다. 실제로 생각해보면 내가 중학교 때에 우리 학교에 한, 두 명의 레즈비언이 있었다. 그 아이들을 두고 절대다수인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은 너무나도 단순명확했다. ‘이상하다’였다. 그저 가십 거리로 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렸다. 왜 그 아이가 레즈비언이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과 그 아이가 어떠한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지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저 걔가 어제 어디서 누굴 만나서 뭘하고 다닌다더라, 걔가 누구한테 고백했다더라, 이런 이야기들로 무료한 우리의 삶에 잠시 활기를 불어넣고 ‘우리는 정상이야’라는 생각으로 더욱 ‘우리끼리의 동지애’를 공고히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곤 했던 것 같다. 우리의 이야기에 어디에도 그 아이의 입장은 들어있지 않았다. 철저히 우리 중심이었다. 그러한 뒷담화들이 소수자에 대한 나의 태도와 인식을 알게 모르게 하지만 실제적으로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소수자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준 책이 참 고맙다. 사실, 아직도 나는 갈 길이 멀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나도 다수 중의 ‘소수’로 살아가는 데에 또 한걸음 나아갔다는 생각이 든다.